포스트 아베 3인방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8일(현지시간) 건강 악화를 이유로 전격 사의를 표명하면서, 그동안 냉각일로였던 한일관계가 반전을 맞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특히 한일관계의 향방은 아베 총리 사임 후 누가 새 총리를 맡느냐에 따라 크게 변화할 가능성이 크다보니 이른바 '포스트 아베' 유력 후보들에게 귀추가 주목된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일 방송 'NHK'를 통해 생중계된 기자회견에서 전격 사임 의사를 밝혔다. 아베 총리는 기자 회견에서 "이달 상순에 지병인 궤양성 대장염 재발이 확인돼 새로운 투약을 시작했다"며, 질병으로 체력이 완전하지 못할 경우 중대한 정치적 판단을 잘못 내릴 위험이 있어 사임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아베 총리가 사임 발표를 마친 뒤 1시간여 만에 청와대는 공식입장을 내고 "급작스러운 사임 발표를 아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아베 총리에 대해 "일본 헌정사상 최장수 총리로서 여러 의미있는 결과를 남겼고 특히 오랫동안 한일 양국 관계 발전을 위해 많은 역할을 해왔다"고 설명했다.
새로 선출될 총리 및 내각과의 협력, 한일관계 증진 의사도 전했다. 강 대변인은 "정부는 새로 선출될 일본 총리 및 새 내각과도 한일간 우호 협력관계 증진을 위해 계속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야당인 미래통합당도 한일관계 개선을 촉구했다. 김은혜 통합당 대변인은 이날 구두논평에서 "아베 총리 재임기간 동안 한일 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았다"며 "역사의 아픔을 인정하는 참회와 화해의 토대 위 양국 간 협력과 미래를 도모하는 새 길이 열리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가 사임하면서 집권 자유민주당은 곧바로 차기 총재 선거 태세에 돌입할 방침이다. 일 매체 '닛케이신문'에 따르면 자민당은 다음달 1일 총무회를 열고, 아베 총리의 후임 총재를 뽑는 선거 방식을 결정한 뒤 같은 달 중순에 총재 선거를 실시한다. 당 총재는 곧바로 새 총리를 맡으며, 새 총리 임기는 선출 직후부터 아베 총리 잔여 임기인 오는 2021년 9월까지다.
새로 선출될 총리는 한일 관계를 포함해 일본의 외교·대외 정책을 재점검할 가능성이 크다. 새 총리가 그동안 냉각됐던 한일 관계를 재고하고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수도 있지 않겠냐는 기대가 나오는 이유다. 이에 따라 아베 총리를 이어 '포스트 아베'가 될 신임 총리 후보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현재 '포스트 아베'로는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같은 당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전 자민당 간사장
이 가운데 이시바 전 간사장이 '포스트 아베'가 되면 한일 관계가 새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 있다. 이시바 전 간사장은 한일 관계에서 아베 총리와 다른 의견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한 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우리나라(일본)가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직시하지 않은 것이 많은 문제의 근본"이라며 "이것이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고 일본을 에둘러 비판하기도 했다.
다만 이시바 전 간사장은 당내 지지 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약점이 있다. 자민당 총재 선출은 당 소속 국회의원, 지역 당원들의 투표를 통해 선출되며, 특히 의원 표가 전체 4분의 3을 차지하기 때문에 의원들의 지지가 중요하다.
또 다른 '포스트 아베'로 꼽히는 기시다 정조회장은 지난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외교장관을 지냈다. 그는 당내 지지도 조사에서는 낮은 순위를 기록해 왔으나, 아베 총리가 당초 자신의 후계자로 낙점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기시다 회장이 신임 총리로 선출될 경우 한일 관계에서는 진전이 없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28일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시다 회장은 아베 총리가 지정한 포스트 아베 그대로다"라며 "그가 총리가 되면 아베 총리가 뒤에서 계속 컨트롤을 할 수 있는 정도다. 한일관계가 이 상태로 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스가 장관의 경우 아베 총리가 재집권한 지난 2012년 12월 이후 현재까지 관방장관직을 맡고 있다. 관방장관은 한국의 비서실장과 국무총리 역할을 하는 자리로, 스가 장관은 지난 8년여 동안 사실상 아베 내각의 2인자 자리를 맡아 온 격이다. 스가 장관이 '포스트 아베'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이유다.
한일 관계에서 스가 장관은 이시바 전 간사장과 기시다 회장의 '중간격'이라는 평이 나온다. 호사카 교수는 "(스가 장관은) 이시바 전 간사장과 기시다 회장의 중간 쯤으로, (자민당과) 연립 여당을 만들고 있는 공명당과도 라인이 있다"며 "그가 총리가 되면 한국과 일본이 일단 대화를 다시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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